판타지는 왜 각광받는가? - 신화가 소거된 세상

두레박 : 군대와 출산의 신화적 비교 : 나


모더니즘과 합리주의는 우리의 세상을 깨끗하게 세척해냈다. 심지어는 종교마저도 세척되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삶에 대한 허무다. 허무 위에 쌓아올려진 것은 부라고 불리는 환상이다.

이제는 거의 아무도 판타지를 '애들장난'이라던가, '허무맹랑'이라고 공격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이제는 모두가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우리에겐 가 모자라다. 절대적으로.


종교와 우화가 이상한 탈을 쓰고 혹세무민하면 합리주의는 그것을 몰아낸다. 합리주의가 세상을 삭막하게 만들면 신화는 그것을 유의미하게 재창조한다. 양자는 보완관계에 있는 것일까.

어느 한 쪽이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 한 쪽을 제거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속아도 알고나 속아라'라고 했던가. 최후의 믿음은 사상 속에 두어서는 안 된다. 믿어야 할 것은 따로 있지 않더냐. 제조된 신도 아니고, 제조된 말도 아니며, 인간, 아니 생물이라면, 아니, 우주 안에서라면 어떤 원자도 알고 있는 것일 게다.

교묘하게 여론을 조정하여, 싸우는 자들을 자기 손에 올려놓고 있는 자들을 숭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아무런 신념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의 신념이란 지배뿐이다. 지배는 생물의 속성일 것이나, 완전한 지배는 늘 멸망을 초래한다.


이야기가 오염되지 않은 시대에, 오염되지 않은 정신으로 쓰여진 글, 그것이 옛 신화이고 판타지이고 동화일 것이다.
알레고리를 집어넣으면 이야기는 심화된 우화가 되고 그것은 생명의 피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노예로 만들기 마련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심어 놓고 간 마지막 비뚤어진 환상마저 세척해갔다. 사람들은 갈 곳을 잃어버리고, 모더니즘의 귀환을 바라는 시대역행적인 사람이 늘어간다. 그렇다 하더라도 역사의 흐름은 갈 곳으로 간다.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선동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느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앞에 펼쳐진 새 시대의 가치는 보이지도 않고 쉽게 찾아낼 수도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어쩌면 현재의 인류 앞에 놓인 것은 거대한 위기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 자체를 한 번 더 바꿔줄 만한 무엇일지도 모른다. 고대의 문명이 지녔던 빛을 지님과 동시에, 고대가 갖지 못했던 강인함, 즉 위험한 것이 발생하더라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대의 빛을 되찾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모른다면 판타지를 만들더라도 판타지가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흐름에 이끌려가는 가장 바깥쪽의 물방울이거나 시든 수초 조각이리라.

by 금숲 | 2005/12/30 22:38 | +Myth Rebirth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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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yself am He.. at 2006/01/04 00:17

제목 : 문학의 시녀여, 그대의 이름은 신화로다
토머스 불핀치는 신화를 두고서 '문학의 시녀격'이라고 말했다. (내 이해력이 늘 그렇지만) 얼른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었다. 아니, 몇 번이고 되뇌어 보아도 신화와 문학은 절대적인 동격이며,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감으면서 가만 생각해 보니까, 퍼뜩 이해가 되었다. 신화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신화가 아닌 문학 작품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핀치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문학이 신화보다 더 잘났다.'는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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